책준 사업장, 142곳 중 85곳 계정대 투입...신탁사 대손위험 여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공사비는 오르는 가운데, 시공사의 신용도마저 낮아지면서 책임준공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신탁사가 신탁계정대를 투입해 대신 공사를 마무리하는 일이 잦아졌고, 최근에는 신탁사 자체도 책임준공 의무를 지키지 못해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7개 주요 부동산신탁사를 대상으로 책임준공 미이행 현황을 점검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포함한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신탁사의 재무 대응력을 진단했다.
신탁사 6곳 적자…순손실 6434억
한신평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이하 책준) 사업장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며, 14개 신탁사 중 6개사가 순손실을 기록했다. 업계 전체 순손실은 6434억원으로, 2023년의 순이익 2358억원과 비교하면 8690억원이 줄었다. 이는 업계 자기자본 약 5조8000억원의 11% 수준이다.
부진한 분양경기와 시공사 신용도 악화 속에 신탁사는 준공을 위해 신탁계정대를 투입하고 있으나, 일부는 결국 책임준공 기한 내 완공에 실패하면서 손해배상 소송에도 직면하고 있다. 신탁사 일부는 유상증자나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자본을 확충했지만, 차입부채는 1조8000억원 늘며 부채비율이 29%포인트 상승하는 등 재무건전성은 악화됐다.

계정대 투입+소송 ‘이중 리스크’…총 85곳에 계정대 집행
신탁사가 책임준공 사업장에서 노출되는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준공을 위한 신탁계정대 직접 투입 부담(타입1), 둘째는 기한 내 준공 실패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리스크(타입2)다.
한신평이 커버하는 142개 책준 사업장 중 신탁계정대를 이미 투입한 사업장은 85곳이다. 이 중 25곳은 아직 준공되지 않아 추가 투입 가능성이 남아 있고, 투입되지 않았지만 미준공인 54곳 또한 향후 신탁계정대 투입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또한, 기한 내 준공을 이행하지 못한 사업장은 43곳에 이르며, 해당 사업장에 대해서는 PF대출 원리금 손실을 보전해야 할 수 있어 소송이 진행 중이다.
3가지 시나리오 분석…S1 현실화 우려 커져
한신평은 신탁사의 재무부담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 테스트를 병행했다.

베이스 시나리오(현 수준 유지): 대손 약 2400억원 수준으로 부담은 크지 않다.
S1 시나리오(분양 침체·시공사 부도 확대시): 대손 부담이 4200억원으로 재확대된다. 이는 2024년 대손 수준이 재현됨을 뜻한다.
S2 시나리오(기한 내 책준 미이행 전체에 손해배상 발생): 대손 5644억원, 신탁계정대 1조6000억원 추가 투입 될 것으로 추산된다. 현실 가능성은 낮지만 파급력은 가장 크다.
특히 현실성 높은 S1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소건설사 신용위험이 올 초부터 현실화되고 있고, 지방 분양시장 침체가 이어지며 실제 재무부담이 확대되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책임준공 리스크는 신탁사 간 대응력 차이를 더 키우고 있다. 한신평은 “책준형 사업장 수가 많고, 자기자본 대비 수주 규모가 큰 금융계 신탁사의 재무 부담이 특히 크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금융계 4개사의 자본 대비 신탁계정대 비율은 150%로, 비금융계(110%)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특히 PF 소송 패소 시 PF 원리금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대주단 주장과 달리, 신탁사들은 연체이자 정도만 책임진다는 입장이다. 실제 배상범위가 법원에서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향후 수천억 원의 부담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책준 높은 금융계 신탁사, 개별 리스크 확대 주의보
한신평은 “전체적으로는 아직 감내 가능한 수준이나, 책준 사업장 비중이 높고 자기자본 대비 수주규모가 큰 금융계 신탁사일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신탁사는 책임준공형 수주 확대와 함께 자기자본 관리 한계에 도달하고 있으며, 자본 확충이 지연되면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한신평 측은 "책임준공 리스크는 단기적 손실을 넘어 신탁사의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개별 신탁사별로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리스크 대비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향후 책준 사업장에 대한 외부차입 제한, 계정대 투입 조건 강화 등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